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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정치

신군부 핵심 정호용 전 국방장관 사망. 군사 반란 5인 모두 역사 속으로. 다시 새기는 12·12군사 반란과 5·18 민주화 운동

by hwanhoya 2026. 9. 14.

전 국방 장관 정호용

정호용 전 국방부 장관이 9월 13일 별세했습니다. 향년 94세입니다. 그는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과 육군사관학교 11기 동기로, 12·12 군사반란 이후 신군부의 중심에 섰던 인물입니다.

 

이번 소식이 크게 주목받는 이유는 전직 장관의 별세를 넘어섭니다. 정 전 장관은 신군부 핵심 인사 5명 가운데 마지막 생존자로 알려졌고, 그의 사망으로 한 시대의 권력 핵심 인물들이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습니다.

 

그러나 인물의 죽음이 역사적 책임까지 끝낸다는 뜻은 아닙니다. 정호용 사망 소식과 함께 12·12 군사반란, 5·18 민주화운동, ​신군부 핵심 5인이라는 검색어가 다시 언급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1. 정호용 전 국방장관 사망과 신군부 핵심 5인

한국 일보 자료 사진. (왼)전두환 전 대통령 (오)정호용 전 국방장관

정 전 장관은 1932년 대구에서 태어나 육사 11기로 임관했습니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이희성 전 계엄사령관, 황영시 전 육군참모차장과 함께 이른바 신군부 핵심 5인으로 분류됐습니다.

 

그는 12·12 군사반란 당시 제50사단장이었고, 이후 특전사령관에 임명됐습니다. 이후 육군참모총장과 내무부 장관, 국방부 장관을 지냈으며 국회의원으로도 활동했습니다.

 

한 인물의 이력에는 여러 직책이 남지만, 사회가 그를 다시 떠올리는 기준은 단순한 경력표가 아닙니다. 그가 권력의 중심으로 이동한 시기와, 그 과정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가 함께 기록됩니다.


2. 12·12 군사반란과 5·18 민주화 운동에서 인정된 책임

정 전 장관은 12·12 군사반란과 5·18 민주화운동 관련 사건으로 재판을 받았습니다. 1997년 대법원은 반란·내란 중요임무 종사 등의 혐의를 인정해 징역 7년을 확정했습니다. 전남도청 재진입 작전인 ‘상무충정작전’을 지원한 책임도 판결에서 인정됐습니다.

 

정 전 장관은 생전 광주 진압 작전의 직접 지휘권과 발포 관여를 부인했습니다. 반면 법원은 5·18 과정에서 그가 맡은 역할에 대해 형사 책임을 인정했습니다.


3. 마지막 생존자의 사망이 남긴 질문

정호용 전 장관의 별세로 신군부 핵심 5인은 모두 세상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5·18의 진상 규명과 피해자·유족의 기억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특히 5·18 당시 최초 발포와 집단 발포의 구체적인 지시 체계처럼 여전히 풀리지 않은 질문들이 남아 있습니다. 관련 인물들이 생전에 남긴 진술과 기록은 역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되지만, 그 자체가 모든 의문에 답해 주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이번 소식은 과거를 단순히 마감하는 뉴스가 아니라, 기록의 빈칸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를 되묻게 합니다. 민주주의는 기념일의 문구만으로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불편한 역사까지 사실에 따라 기억할 때 더 단단해집니다.


4. 정호용 사망 이후에도 역사는 계속된다

정호용 전 장관의 사망은 한 시대를 상징하는 인물의 퇴장입니다. 그러나 역사적 평가는 개인의 생애가 끝난 뒤에도 기록과 증언, 판결과 연구를 통해 이어집니다.

 

12·12와 5·18은 과거의 사건이지만, 헌정질서와 군의 정치 개입, 국가 폭력의 책임이라는 질문을 오늘에도 남깁니다. 그래서 정호용 전 국방장관 사망을 둘러싼 관심은 한 사람의 부고를 넘어 한국 현대사를 다시 확인하려는 움직임으로 읽힙니다.

 

남은 과제는 분명합니다. 사건을 선정적인 이름으로 소비하기보다, 무엇이 법원에서 확인됐고 무엇이 아직 밝혀져야 하는지 구분해 기억하는 일입니다. 그것이 다음 세대에게 가장 정확한 역사를 건네는 방법일 것입니다.

 

여러분은 중요한 현대사 사건을 기억하고 배우기 위해 학교 교육과 기록물 공개 중 무엇이 더 보강돼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댓글로 의견을 남겨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