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늘의 애니

케데헌 이후 다시 주목받는 ‘굿’, 서울시무용단 무감서기가 보여준 변화

by hwanhoya 2026. 9. 14.

케이팝 데몬 헌터스. 스틸컷

‘케이팝 데몬 헌터스’, 이른바 케데헌이 한국 무속의 이미지와 서사를 세계 시청자에게 낯설지 않게 소개한 뒤, 굿을 바라보는 시선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습니다.

굿은 오래전부터 누군가에게는 낯선 의식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삶의 고비를 함께 건너는 자리였습니다. 최근에는 음악·춤·의상·연기가 어우러진 복합예술로 다시 읽히며 공연장으로도 옮겨가고 있습니다.

서울시무용단의 신작 ‘무감서기’는 이 흐름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케데헌의 인기가 전통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전통문화에 들어갈 새로운 입구를 만든 셈입니다.


1. 케데헌이 넓힌 한국 무속문화의 관심

디즈니플러스 운명전쟁

케데헌은 K팝과 판타지의 문법 안에 한국적인 상징과 정서를 녹인 작품입니다. 세계적인 흥행 이후 해외 팬들 사이에서는 작품 속 배경과 의상, 민속적 상상력에 대한 관심도 이어졌습니다.

다만 케데헌을 실제 굿의 재현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애니메이션은 창작물이고, 굿은 지역과 무당, 의례의 목적에 따라 서로 다른 모습으로 이어져 온 생활문화입니다.

중요한 변화는 ‘낯선 소재’였던 무속 이미지가 대중문화 안에서 이야기와 퍼포먼스의 언어로 다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2. 굿은 ‘미신’ 한 단어로 설명하기 어려운 예술

굿을 한마디로 규정하기 어려운 이유는 그 안에 여러 역할이 겹쳐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의 안녕을 빌고, 공동체의 걱정을 나누며, 음악과 몸짓으로 감정을 풀어내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특히 굿판의 춤은 정해진 동작을 보여주는 데만 머물지 않습니다. 장단이 바뀌고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참여자의 감정과 움직임도 달라집니다. 보는 사람과 하는 사람의 경계가 느슨해지는 순간이 생깁니다.

이런 특성은 오늘날 공연예술이 찾는 질문과도 닿아 있습니다. 무대 위의 완벽한 기술보다 몸으로 감정을 꺼내고 함께 반응하는 경험 말입니다. 굿이 현대무용의 소재가 될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3. 서울굿에서 출발한 신작 ‘무감서기’

서울시무용단은 서울굿의 한 절차인 ‘무감서기’​를 모티브로 신작을 만들었습니다. 무감서기는 굿을 의뢰한 사람이 무녀의 옷을 입고 즉흥적으로 춤추는 과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복을 비는 사람이 의식의 바깥에 머물지 않고, 직접 움직임에 참여한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작품은 이 장면을 그대로 복원하기보다, 인간이 상처를 마주하고 회복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으로 확장합니다. 무용수들의 움직임과 음악, 무대 장치가 하나의 현대적 굿판처럼 이어지는 방식입니다.

공연은 9월 10일부터 13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렸습니다. 러닝타임은 70분이며, 서울시무용단이 전통 소재를 어떻게 동시대 무대로 옮겼는지 보여준 무대였습니다.


4. 전통을 ‘힙하게’ 소비하는 데서 멈추지 않으려면

케데헌과 ‘무감서기’는 출발점이 다릅니다. 하나는 세계 시장을 향한 애니메이션이고, 다른 하나는 서울굿의 몸짓을 탐구한 무용 작품입니다. 두 콘텐츠를 같은 것으로 묶기보다,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서로 다른 장르로 이어진 사례로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전통은 박물관 안에서만 보존되지 않습니다. 새로운 관객이 질문을 던지고, 예술가가 자기 시대의 언어로 답할 때 다시 살아납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원래의 맥락을 지우거나 이국적인 장식으로만 소비하지 않는 태도도 필요합니다.

굿은 이제 ‘미신인가 아닌가’만으로 다룰 대상이 아닙니다. 노래와 춤, 이야기와 치유의 감각이 오래 축적된 문화입니다. 케데헌이 열어 둔 관심의 문 너머에는, 훨씬 넓고 깊은 한국 공연예술의 세계가 있습니다.